should not have pp

대충 추억 + 퇴사 원인 탐구하는 글

때는 2020년 1월

장소는 감사교육원이었다.

키 큰 사내 하나가 등판해

보고서 강의를 한다고 했다.

첫 인상부터, 개성이 뚜렷해보였다.

해외 유명 영화 감독을 30% 정도 닮은 외모에

감사원 회식
출처: 네이버

뭔가 계속 미소를 머금고 계셨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참 시작부터 특이했던 것 같다.

교육원에 강의하러 오는 사람들은

보통 과 단위로 써서 만든

감사원 직원용 교재를 이용하거나

본인이 직접 만들어온 PPT를 사용하는데

그 분은 무려 본인이 직접 쓴 교재를 사용했다.

무슨 특강용 교재처럼 얇은 게 아니다.

기출문제집 상권 분량 정도라 이해하면 편하다.

못해도 300페이지는 되었으리라.

그 한번의 강의를 위해, 그분이 직접 쓴 교재였다.

무튼,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좋게 말하면,

그만큼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었으리라.

교재의 구성은 이랬다.

좋은 보고서란 어떤 것인지 대략적으로 소개하는 부분

못쓴 보고서의 사례와

그걸 고친 좋은 사례를 소개하는 부분

(물론 다 그분이 고친 것이다)

그 누가 봐도

고치기 전의 보고서는 영 별로이며

고친 후의 보고서는

보기 좋고, 간결하다 느꼈을 것이다.

솔직히 느낌 있었다!

보고서 강의하러 오는 분이 여럿 있었고

모두 원에서 보고서 좀 치는 사람이었을테지만

다들 원론적인 얘기만 하거나

PPT로 일부 사례만 소개하다 보니

구체적으로 잘 와닿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수업이 졸리기도 하고…

근데 이 분은, 강의력을 떠나

일단 사람이 jonna 특이해서 집중이 잘됐고

사례 수십 개를 책에 박아 눈 앞에 보여주니,

좀 느껴지는 게 달랐다.

마치 기본서만 보면 정리가 안되지만

기출문제랑 같이 보면 와 닿는 느낌이랄까.

이게 고시출신 20년 짬 감사원 과장인가?

이런 생각이 절로 들며

호…저 사람한테 배우면 늘긴 늘겠다

와 같은, 지금 생각하면 참 오싹하고

한 우주 영화가 떠오르게 하는 생각이

그때는 아주 자연스레 들었다.

감사원 후회
그때 내 뚝배기를 should have broken

근데, 생각이 딱 그 정도에 그쳤더라면

어쩌면 나는 다른 과에 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근데…

앞서 말한 교재에는 사실 두 챕터가 더 있었다.

이제 막 감사원 과장이 될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

그리고 감사관이 될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

(보통 보고서 강의용 교재에 누가 그걸 넣겠냐만

다시 말하지만, 그분은 특이했다)

뭐 대충, 일반적으로 좋은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과장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하고, 책임은 내가 다 진다.

직원들은 열심히 해야 한다. 

뭐 그런 내용이었다. 좋은 내용이었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이

글에서 풍기는 뉘앙스를 보고 오해하실 수 있는데

그 분은 위에 말한, 본인이 적은 내용을

거의 대부분 지키셨다.

솔직히 살짝 예민보스에 쿠사리를 자주 먹긴 했어도

과원 입장에서 일하기 편하고 든든했던 과장은

그분이 원탑이라 생각한다.

아 근데 문제는…

그 교재에 자기소개 코너도 있었는데

그 내용이 뭐였냐면…

복기가 완벽하진 않지만, 대충 이랬다.

애주가에 애연가입니다. 회식은 강요하지 않습니다. 과장은 그래선 안됩니다. 원치 않는 회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단합을 위해 6개월에 1번 할까말까… 킹치만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술자리는 즐기는 편입니다.

사람이 보기 좋은 것만 본다고 했던가?

난 이렇게 읽었다.

어?

회식 안한다고?

유능해보이고, 밑에서 일하면 많이 배울 것 같은데

술자리도 강요안한다고? 

아, 역시 오해를 할 수 있어 미리 말씀드리면

이 말 자체에도 거짓은 없었다.

다만 한국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걸

나이 서른 되도록 뼈.저.리.게.는. 느끼지 못한

내 불찰이 있었을 뿐이다.

아무튼…

특별함에서 풍기는 카리스마

개쩌는 보고서 작성 능력

스윗(호소)한 자기소개

대환장 3대장에 제대로 낚인 나는

비인기 부서 중 하나인 그곳을 3지망에 박아버렸고

성적 구린 놈들 중에 어떤 놈을 보낼까 고민하던 인사과는

아주 마음 편하게, 나를 그 과로 꽂아버리기에 이른다.

16 thoughts on “should not have pp”

  1. 혹시 쥼 민망한 질문이지만 동료 감사관분들은 연애는 보통 많이들 하시나요…? ㅎㅎㅎ 연애란게 다 개인하기나름이지만 소개팅으로도 만나고 그러나요?? 출장이 많이서 이성 만나기가 힘들거같은디 루트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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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팅 열심히 하는 애들도 있고, 뭐 다양해요. 평일은 좀 희생하지만 어차피 주말에는 프리이기 때문에 무난무난 한 것 같아요.
      그냥 사람사는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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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글 진짜 잘쓰시네요 잘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부 인사적체가 심해서 사무관 승진까지 국가직 다른 부서에 비해서 오래 걸린다던데 진짜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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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년 전만 해도 아우성 엄청 심했는데, 그때도 다른 부처 대비하면 늦은 편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해요.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구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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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글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1년 중 출장가는 날의 비율과

    가게 된다면 정부청사가있는 세종으로 가장많이가나요?

    어느 지역으로 보통 많이 가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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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율은 대충 다섯 달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다른 글에도 썼듯 과마다 다르긴 하지만요.
      지역은 대상기관마다 과마다 다르긴 한데, 아무래도 세종이 제일 맛집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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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안녕하세요. 7급 신규가 첫 해에 맡게되는 감사(출장) 건수는 보통 몇건 정도일까요? 일년 통틀어요. 연수기간 빼고 산정하면 출장 60일~100일 잡고, 한번출장에 평균 5일 잡으면, 12~20건? 정도 나가나요? 아 그리구.. 지방출신이 서울에서 터 잡고 살게 될꺼면 위치 선정이 중요할것 같은데요. 월세나 전세 말고 실제 살고계신 분들은 보통 어디에 거주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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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 출장 얼마나 나가는지에 대해 설명한 글이 있으니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직원들 마다 다양한 곳에 살고 있어요. 강남 강북 경기도, 세종 뭐 여기저기 삽니다.
      출장가거나 출근하기 편한 곳을 물어보신 것 같은데, 3호선 라인(출근편함)이나 4호선 서울역(출근셔틀, 출장기간에 편함), 한성대(출근셔틀) 라인 이쪽이 좋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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