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날의 기억
나쁘지 않았다.
생애 첫 제대로 된 직장으로의
첫 출근이었으니까.
3.5도 나오지 않아 장학금을 토해내던 롤대남에서
어엿한 대한의 갓급 공무원이 되었으니까.
과 배치도 나름 만족스러웠다.
성적이 좋지 않았으나
어쨌든 지원을 한 곳이었고
호기심도 충만하던 때였으니까.
뭐, 적어도 그땐 그렇게 생각했단 얘기다
적당한 설렘과 긴장을 안고
8시가 조금 넘어 안국역에 내렸다.
아이고 회사 위치도 좋네
여기가 어디던가?
색깔없는 나의 20대에서
그나마 낭만을 찾을 수 있었던
삼청동이 아닌가?
흐뭇한 감정으로 배리어를 두르고
종로 02버스를 기다렸다.
물론,
이제는 공강시간을 때우다
학교 뒷구녕으로 넘어가던 대학생도,
옷에 음식 냄새 밴 청바지의 알바생도 아닌
직장인이라는 생각에서 오는 무게
그리고 어색한 정장과 타이가
조금은 불편함을 주긴 했다.
버정에는 동기들이 제법 보였다.
과하게 예의를 차리던 사이에서
어느새 서로에 대한 역겨움도 느끼는 사이가 된 그들과
과원들 이름은 다 외웠냐
니네 건물 어디랬지?
아 조오온나 떨리네
대충 이런 얘기를 나누며
버스에 탔다.
긴장된 상황을 앞둔 시간의 흐름이 늘 그렇듯
어느새 과 앞에 와 있었다.
아무도 안 와 있으면 어떡하지?
문 어떻게 따지?
이런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문이 열려 있었다.
8시 반인데도 2명이 와 있었는데
한 명은 수석
한 명은 아주 익숙한 얼굴의
그 과장이었다.
적당한 억텐으로 정중히 인사를 했더니
차 한잔 하자고 하더라.
마침 둘 다 흡연자라
옥상에 믹스커피 한잔씩 들고 갔다.
사실 과장과 갓 들어온 신입이
첫 날에 나눌 대화는 뻔하다.
뭐 일단 기본적인 호구 조사를 할 것이고
여기 왜옴?
지원해서 옴?
이런 질문 몇 번 한 후
대충 화이팅~ 아자아자~
이런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긴 힘들 것이다.
내가 나눈 대화도 그와 유사했다.
근데 대화가,,,
상당히 맛있었다. 서로에게.
일단 그분 입장으로 생각해보면, 흡족했으리라.
감사청구 1과
신입이 잘 지원하는 과는 아닌 곳인데
내가 일단 ‘지망’을 했고,
왜 했냐는 질문에, 내가
님 강의가 인상적이어서요
이렇게 비데칠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내 성적이 안 좋은 것, 회식 잘 안한다고 했던 것
기타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고, 사실은 “3” 지망이었지만
내가 입싹닫고 저 말만 남겨 답하니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시더라.
(좀 지나서 깨달은 사실인데, 그런 거 좋아하는 성격이라
진짜 기분 째졌을 듯)
내 입장에서도 괜찮은 대화였다.
그대가 많이 배워야 해~
그대는 뭐 어쩌고 ~
그래서 그대는 ~
모든 말에서 나를 그대라고 지칭을 하는 특이함에
살짝 웃참 위기까지 갈 정도여서
이거 애들한테 말해줘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으니.
무튼 그렇게 성공적인 대화가 끝나고
사무실로 내려와
하릴 없이 앉아 있었다.
물론 첫 출근 특
뭐 하나라도 보는 척이라도 하는 척을 하는 척
오지게 했었다.
그렇게 ∗퍼포를 하다 9시가 가까워지니
* 대충 딱히 할 거 없으면서 대단한 거라도 하는 척 하는 모습을 낮잡아 부르는 말
직원들이 하나씩 늘어났다.
근데 ? 빈자리가 많았다.
4~5명 정도는 없었다.
아…출장 때문에 이런 광경이 흔하다더니
리얼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감사원의 경우
과에 과장 혼자 남아있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아무튼…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하며,
위에 언급한 것과 비슷한 흐름의 대화를 나눴다.
과원들은, 조직도 사진에서 보이는
각짐, 날카로움은 세월이 많이 앗아갔으나
그래서인지, 전반적으로 부드러웠다.
좋은 사람들임은 분명했다.
특히 내 사수의 경우
사진에서는 뭔가 좀 날카롭고
남 잘 괴롭힐 거 같이 생겼었는데
실물은 걍… 존나 착하게 생겼더라.
그리고 그 양반의 성격은
그냥 착한 걸 넘어, 천사에 가까운 정도였다.
내 자리, 전화, 온갖 세팅을 다 해주고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정말 사람 좋은 얼굴로 말하곤 했다.
그래서 실제로 언제든지 물어보았고
그는 그때마다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참 고맙게 생각한다.
단순히 그런 것 때문에 고마운 건 아니다.
동기 중 그 누구도 절대 공감할 수 없었던
감청1 서무만의 그 ㅈ같은 감정을
제대로 알고 있었고
공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어서
고마운 게 더 크다.
무튼… 지금도 신입들과 잘 지낼 것으로 예상되고
실제로도 그러고 있다고 전해지는 그는
처음부터 편안함을 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 편안함 덕에, 처음 걸려오는 전화도
적당한 수준에서 얼타고, 잘 해결했었다.
그렇게…
뭐 한 건 거의 없지만 상당히 알찬 하루가
대충 마무리 될 쯤…
과장님도 나에게 편안함을 주려 했다.
좀 결이 다르긴 했지만 말이다.
바로 ‘번개’를 하자는 것이었는데,
‘서무가 새로 왔는데,
저녁이라도 함께 해야 하지 않겠나!’
뭐 대충 이런 생각이 드신 모양.
그를 두고, 모 수석님이 했던 표현을 빌리자면
“상대방이 원치않는 호의” 중 하나를 베푼 것이었으나
뭐 그땐 놀라긴 해도
솔직히 괜찮았다. 딱히 약속도 없었던데다
뭣보다, 처음이었으니.
첫 날 번개.
일단 그게 감사원 문화였던 건 아니다.
주차장에서 마주친 동기들이
“오늘??” “첫날인데?”
대충 이런 말을 하며, 놀랍다는 반응이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그들에게서 부러움의 눈빛도 조금은 읽었다.
첫날에 적지 않은 서무들이
꿔보, 그니까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는 느낌을 겪는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니까.
생각해보면 얼마나 감사한가?
직원들이랑 술자리도 얼마 안갖는 사람이
신입 왔다고 친히 술자리까지 마련하는 것이!
아무튼… 전혀 나쁠 건 없는 기분으로
술자리로 갔다.
물론 그렇다고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난 술 싫어하고, 못하거든…
전형적인, 몸에서 안 받아주는 타입
한 병 이상부터는
더 들어가면, 몸에서 뭔가가 나와야 한다.
약간 개워 내고 다시 마시면 마셔지는 리필 형이라
(정신 차리고 변기를 붙들고 10번까지 해볼 때에도
더러워진 변기도 잘 닦아주고, 집도 알아서 잘 찾아간다)
인사불성은 피하지만, 대신 내 목에서 불이 난다.
그래서 당연히 걱정이 됐다.
대학생때나, 알바생때나, 뭐 동기들이랑 술마실 때는
알아서 안 먹거나, 적당히 런치면 그만이었으나
이건 직장 회식(번개)이지 않은가…!
걱정 70 기대 5 집가고 싶음 25
딱 이 정도의 마음을 갖고, 처음 보는 과원들과
그 ‘번개’ 장소로 갔다.
아, 가는 길에 5급 형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과장님 회식 별로 안하신다던데…?
뭔 소리냐 술 개좋아한다.
뭐 이런 대화도 오고 갔으나
난 그걸 걍 “아, 술은 확실히 좋아하구나”
대충 이 정도로만 이해했던
무서운 이야기도 있었다.
암튼 그 날의 번개를 대충 요약하자면,
- 대충 난 뭔 소린지 모르는 일 얘기가 쏟아짐
- 서무가 처음 왔는데 번개도 안 뺀다며 인성 올려쳐줌
- ㄳ
- 2로 인해 갑자기 나의 업무능력, 인성 대폭 올려쳐짐
- ? 무튼 ㄳ
- 30초 1짠을 하다, 2시간 후 과장 런
- 한번 개워내고, 호프서 졸다가 5급 형한테 약 쿠사리&놀림
이렇다.
적당히 토하고, 적당히 졸았고
그래서 적당히 욕 먹고, 뭐 아무튼 잘 끝났다.
첫날이었지만, 아주 조금은 과원들과 가까워진 기분이 들기도.
심지어 다음 날 늠름하게 일찍 출근해,
서무로서의 정신력을 갖춘 척 약간의 퍼포도 섞어주었다.
그러자 과장님은 거의 정신이 나가시더니
나의 1도 드러나지 않은 업무 능력까지도
올려쳐주기 시작했다 (?)
도대체 어찌하여 그러는 것이었는지
내 EQ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감사했다.
어어…… 근데
과장님한테 5시 반에 쪽지가 오네?
오늘 저녁 되나?
(아, 예 뭐…)넵 !
대충 이틀 후 p.m 3~4시쯤
그대 동기 몇 명 모아와
넵!
아!
마음에 없는 회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마음에 맞는 직원들과 번개를 즐깁니다.
이 제시문에 담긴 의미가 다음과 같은 것이었음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회식을 강요하나?
? Not sure
회식을 자주하나?
literally 회식은 NO
회식과 번개는 다르나?
Hell no, 본질적으로 fuxxing same
번개의 빈도는?
Jonna mennal chim
낚였나?
Think so
대가리 뜨겁나?
Yes
글 새로 뜬거 보고 멍멍이같이 달려왔읍니다 오늘도 글 맛있네요 챱챱
멍멍!(ㄳㄳ)
글쓴분껜 슬픈이야기겠지만 글빨 기깔나서 재밌게 후루룩 읽었습니다…. 감사원 그만두신 이유가 이런 번개와 술 문제가 가장 크셨던 거겠죠…? 새로운 글 언제 올라오나 하루에 블로그 다섯 번은 들어오는 거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즇은 밤 되세여
가장 큰 건 아니었습니다 ㅋㅋ 좀 복합적이었어요
감사합니다 ~
아 ㅋㅋㅋ 번개라니.. 생각도 못했네요. 술 못마시는 저는 허걱 했네요. 저라면 저 번개를 어떻게 부드럽게(?) 거절했을까 고민 해보기도 합니다 ㅎㅎ 그래도 운영자님은 첫날 저정도인거 보면 첫인상도 괜찮고 사교성도 좋으신가 본데요? ㅎㅎ
고민해보신 부분들에 대한 답이 차차 올라갈 예정입니다 ..ㅎㅎㅎ
감사원 감사관으로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도, 1년에 절반 가까이를 모텔에서 잔다는 점과 저런 거 때문에 너무 망설여지네요 ㅋㅋ 몰랐으면 어쨌을까 싶습니다 글 재미있게 잘 쓰시네요 ㅋㅋ 감사합니당
아 이게 좀 특이한 케이스기도 하고, 철저히 제 시선에서 본 거라 그렇지(물론 구라는 없음)
절대 다 이렇지는 않습니다 ㅋㅋ
늘 글 잘보고 있습니다. 일행직이나 감사직을 준비하려고 하는데, 혹시 감사원에 맞는 성향(?)의 사람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꼼꼼하고, 정리 잘 하는 성향? 정도인 것 같습니다. 외향적이기까지 하다면 더 좋을 것 같구요.
너무 사소한 질문이라 민망하지만 갑자기 궁금해져서요.. 출장지에서 아침은 보통 어떻게 해결하나요? 그 시간에 연 식당이 잘 없지않나 싶어서요. 그리고 아침을 먹지 않는 사람도 있을텐데 출장지에서는 걍 무조건 단체?활동인지 궁금하네요
아침은 한번도 신경쓴적없습니다 ㅎㅎ 어르신들 아침 은근히 잘 안드시고, 드셔도 같이 안드세요
감사관님들이 세종사시는분도 있고 강남사시는분도 있고 거주지가 다양하다고 하신 댓글을 보았는데요, 멀리 사시는분들은 출장없을땐 차로 감사원까지 출퇴근하시는건가요..?
그러기도 하고 ktx 정기권 끊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7급에서 6급까지 3년정도 걸린다고 글에서 번 것 같은데 혹시 다른 직급은 얼마나 걸리나요? 특히 6급에서 5급으로 승진할때요!!!
최근에 빠르게 하신 분들 보면 6에서 5로 6년 정도 걸리셨습니다.
승진 적체가 삽삽오졌던 몇 년 전에는 7에서 5까지 일 잘하시는 분들도 10년~11년 이렇게 걸리셨어요.
근데 지금 퇴직 이후를 준비하시는 분들(60’s 중반 ~ 70’s 초반)이 정말 엄청나게 많아서, 앞으로는 확실히 나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