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어떤 것 때문에 그만두시는 건가요?
음…글쎄요.
다른 곳 가시는 거에요?
아니요…
?
ㅎㅎ
퇴직일은 언제로 하시겠어요?
그냥 제일 빠른 날로 해주세요.
월급이 15일 기준으로 계산돼서…
아 아니요. 그냥 제일 빠른 날로 해주세요.
23년 2월 초
가까운 동기 몇 명, 과장님에게 의사를 전한 후
바로 인사과로 달려가 인사 주무와 나눈 대화다.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아주 당연하게, 30년 이상 일할 줄 알았다.
정년이 연장되면, 받고 5년 더?
어떤 의심도 하지 않았다.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몇 년을 일할 지 보단
나는 몇 급으로 퇴직할까
당연히 그게 더 궁금했었다.
짤릴 일은 없으니까.
근데 내가 나를 짤라 버렸다.
처음 시험에 합격할 때만 해도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퇴사를 공식적으로 입밖으로 꺼내고
실제로 백수가 되기 까지 걸린 시간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지만
퇴사를 결심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다.
직장인은 누구나 가슴 한 켠에 사표를 넣고 다닌다.
이런 차원의 결심이 아니었다.
여기서 30년째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고
오싹한 거부감을 느낀 시점부터
언제가 됐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21년의 언젠가였던 건 확실하다.
모든 것에 아무런 에너지를 느끼지 못할 때였으니까.
추상적인, 뇌피셜스러운 증상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무슨 심리 검사 같은 걸 받아보라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있던 과는
‘감사청구’라는,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실상은 떼쟁이들을 상대할 가능성이 높은
민원 성격이 강한 곳이었기에
회사에서도 ‘너네는 가급적 검사하시라…’ 했던 걸로 기억한다.
검사는 업무, 직장, 개인 생활
뭐 대충 이런 세 분야의 만족도를 측정했는데
내 점수는, 각각 5, 7, 15점이었다.
점수를 보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하나는 평타, 하나는 평타 이상, 그리고…
? 왜 갑자기 15점?
내가 받은 점수는 10점 만점이 아니라
100점 만점 기준의 점수였다.
그러니까, 100점 만점에 5점, 7점을 받은 거다.
지금 생각해도 잘 이해가 안되는
버그같은 점수라 생각한다.
그 지경으로 점수가 나오면
검사를 주관하는 병원 간호사분이 전화를 해준다.
혹시 요즘 많이 힘드세요?
이런 식으로 대화의 이니시를 열고, 병원에 한번 와서
진지하게 상담 받아보라 했었지만
너무 귀찮았기에, 그냥 대충 막 해서 그런거라고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며 적당히 끊었다.
거짓말이라 한 것은, 사실은 오히려 반대였기 때문이다.
뭐 하나라도 의미를 찾기 위해서
열심히 설문 한 문항 한 문항에 응답했다.
감사원 직원들 점수는 다 비슷한가 싶어
과 사람들의 점수를 구경했다.
갓 입사한 옆 자리 서무는 8, 90점대였고
낮게 나와서 풀이 죽은 마흔 넘은 국서무 형님의 점수도
가장 낮은 분야가 70점대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솔직히 이상하게 생각하긴 했다.
설문지를 적을 때 컨디션은 썩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서.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납득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그때만큼 망가진 적이 없었으니까.
일에 흥미, 의미를 잃은 지는 꽤 오래된 상태였고
평소 몸과 마음도 정상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그때를 평가하자면
가뜩이나 힘든데, 하늘도 무심하지
참 여러가지로 억까를 당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일단, 몸에 사고가 너무 많이 났다.
물론 정말 심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겐
참 내가 복에 겨운 말을 하는 것일 수는 있으나
사람이 그런 극단값만 따지면 어떻게 사나.
아무튼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 좀 많이 일어났다.
과 사람들 모두가 똑같이 억지로 백신을 맞았는데,
나만 부작용이 났다.
얀센인가 개색긴가 맞았는데, 몸이 이상하더라.
손목에 물집이 징그럽게 잡히면서, 아팠다.
병원갔더니, 큰 병원 가랜다.
갑자기 쌩돈 수 십을 내고 간 병원에서는
대상포진이라 하며 온갖 약을 먹고, 바르라고 줬다.
나이든 사람들만 걸리는 건데,
젊어도 스트레스 땜에 걸릴 수 있다며
만물 스트레스설로 염병을 떠는데
이거 뭐 부작용 보상 안되냐니까
안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애꿎게 아프고, 돈만 쓰고,
어쩌다 닿으면 아픈 역겨운 물집 올챙이들과
두 달 정도 함께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코피가 나기도 했다.
절대 귀엽게 끝나는 양이 아니었다.
체감상으로는 비타 500 한 병 양은 됐을 텐데
과장은 아니었으리라.
주머니에 항상 한 뭉치의 휴지를 갖고 다녔고
한 번 터졌다 하면, 휴지를 7번은 갈아끼워야 했으니 말이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려, 피가 멎을 때까지 기다리거나
병원 가서 원인을 알아보느라
애꿎은 연가도 많이 소진했었다.
참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뭔 놈의 피가 그리 많이 났는지
똥 싸면 변기가 시뻘겋게 물드는 것도
열에 일곱 번은 됐었다.
Exid마냥 위 아래로 피를 뿜는 현상을
몇 달을 참다가, 혹시 뭐 대장암이라도 걸렸나 싶어
수면내시경을 조졌더니, 대장은 깨끗하다더라.
참 신기하게도, 그걸 오피셜로 알게 된 후부터는, 피가 나지 않더라.
만물 스트레스설이 1승을 추가하는 사건이었다.
뭐 여러가지 더러운 얘기를 많이 했는데
아무튼 그때의 나는,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나는 왜 그렇게 망가진 걸까?
엄밀한 분석에 따른 것도 아니고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나는 그 원인을 직장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일단 이전의 삶에서는 이런 적이 없었고
다른 조건의 변화는 없는데
직장을 다니고 나서부터 맛이 갔으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일주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직장이기도 해서.
왜?
그리고
뭐가 그리 싫었던 걸까?
왜 그만두셨어요?
퇴사 후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고
퇴사하기 직전에도
시제만 바꾼 표현으로 지겹게 들은 질문이다.
한 때는 1시간 짜리 웅변을 시켜도 자신있게 할 수 있을 만큼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실제로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그만두지 말라고
소리 높여 꾸짖을 갈을 조지는 수석님과의
논변(?)에서도 승리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꼴랑 1년 지났다고, 흐릿해진 것이다.
그래서 그냥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주워와
아무 제약없이 써 보려고 한다.
내가 퇴사한 이유를 적는다고 해서
거기에 나쁜 이야기들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좋았던 기억도, 이제는 그리운 이야기들도
다 있을 것이다.
그게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했던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교류하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고
그렇게 모든 장/단에 솔직해져야
좋은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오히려 더 잘 드러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쓰신 글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정보도 얻었구요.
최근글을 읽으면서 건강한(?) 또 스트레스 없는 생활을 하고 계시길 빌었습니다. ^^
게시글 초반에 말씀하신 것과 같이 감사원 직원 및 직무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더군요.
혹시 경력직 또는 임기제로 선발하는 디지털포렌식 감사주사보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 관련된 일을 하곤 있지만 이직을 고려하고 있어서요.
특히 요즘 관심이 생긴 디지털포렌식 감사주사보에 대해선 더 없어서 이렇게 글을 남겨 봅니다.
안녕하세요. 원래는 사실상 한 분이서 다 하셨는데, 전 총장님 이후로 수요가 커지다 보니 22년도?에 경찰 쪽에서 서너 분 정도 들어오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최근에는 포렌식 안하는 감사에도 참여해서 그냥 다른 감사관들처럼 일 했다고 들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제가 아는 건 딱 거기까지입니다… 그분들이랑 한번도 접선한 일이 없어서요..
접선… 팀으로 움직이니 그럴 수 있겠네요~
감사합니다.
사실 일반 감사관들이 봤을 때는 전문 지식도 있으시고, 수감자들과 직접적으로 갈등하는 포지션은 아니라 좋아 보였는데!
그분들 입장에서는 실상 어떨지 몰라서 참 뭐라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ㅋㅋㅋ
기술직들이 경력채용으로 들어오면 주로 어떤식으로 일하나요
공사 서너군데 다녀선지 공기업 돌아가는 형태나
각 회사 주력사업구조를 금방금방 파악하는 요령은 자신있고요 ㅋㅋ
다른 감사관들이랑 똑같이 일합니다 ! 좀 다른 거라면, 전문 분야 쪽(과, 업무)에서 계속 일하는 느낌이 강한 정도인 것 같네요
빠른답변 감사합니다
제가 전공한쪽은 나라장터에선 잘안올라오던데
미리 생각해둬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