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입사 이유(인생사)

왜 나갔냐?

이 질문에 답을 하려 하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질문

난 왜 들어갔지?

이게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하는 이유는

왜 나갔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왜 들어갔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적잖이 설명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입사 이유는 어떻게 보면

상당히 “하찮고, 얄팍”하다.

  1. 빨리 쇼부를 볼 수 있는 시험으로
  2. 서울에서 일하는 것

크게 이 2가지였는데

누가 봐도, 감사원에서 하는 ‘일’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내적 동기가 굉장히 약하다는 말.

실제로 왜 들어왔냐는 한 수석님의 질문에

정확히 저렇게 답하자

그분이 상당히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그카면 안되는 기라!” 라고 했던

재미난 일화도 있었다.

뭐 사실 면접 질문에 답하듯

원대하게 포장할 수도 있었지만

내 캐릭터 자체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면접 준비 안하면 무조건 떨어짐)

왜 그만뒀냐는 말에 대한 답을 쉽게 하기 어려운 건

사람은 다 다른데, 내가 이렇게 말하는게

상대에게 괜히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은

쓸데없는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좀 계획이 없이 사는 인간에 가깝다.

때는 2017년 봄

나름 3학년을 마쳤으니

이제 취준을 해보자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고, 휴학을 했다.

처음에는 사기업 쪽을 생각했다.

외벌이 공무원의 둘째 아들로 자라온 터라

공무원의 경제적 여건을 알고 있었기에

굳이 공무원을 할 생각은 없었기도 하고

기어이 3수까지 해서,

뭐 어쨌든 좀 더 좋은 대학을 왔는데

대학 노상관인 공무원 시험이라…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 아웃캠퍼스니 뭐니 여기저기 가입하고

정보를 모으는데

뭘 좀 해야하데?

내가 한 대외활동이라고는

강원도에서 일주일 교육봉사한 것 뿐인데

합격 후기를 남긴 사람들은

거의 뭐 인터내셔널 인재들이었다.

그게 평균이 아닐진 몰라도, 아무튼 내가 본 사람들은

다 그래 보였다.

나도 뭘 좀 해볼까 하고 하나씩 알아보니

4학년이 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고

한창 LOL창으로 살던 그때의 내가 하기엔

너무 버거워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냥 시험을 보기로 결심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른 전문직을 좀 기웃거리는게 나았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때는

자라며 먹어온 밥이 나랏밥이라 그런지

국정원, 5급 공채

이런 것들에 눈이 갔다.

그래서 종로에 있는

무슨 국정원 출신 아저씨가 하는 학원 설명회도 구경가고

수능 때 언어의 기술 책 쓰던 이해황 아저씨가

5급 1차 교재도 내길래 그 책도 일단 사두긴 했었다.

신헌 자료해석, 박준범 상황판단 이런 것도 다 샀다.

(현재 집에 모두 새 책으로 존재)

근데… 마땅치 않았다.

뭐할지 결정못하고 미적거리다 롤만 하니

어느새 5월이 지나갔고

이미 뭘 선택하든, 그해 1차 시험은

다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의미없이 휴학 3달이 날라간 6월 초

일단 뭐라도 하자는데 생각이 미친다.

하자, 국가직 7급

직렬은?

잘 모르겠으니 그냥 일행!

시험은 8월 20 며칠이었는데

당시 88일 정도 남아있었다.

공부를 시작한 날 도서관에서 친구한테 전화해서 

80일의 전사 ㅇㅈㄹ 하면서 

염병을 떨었던 기억이 있다. 

처음 7급 시험을 구경하고 든 생각은

그냥 암기 농장형 시험이라는 생각.

국어 기본서와 기출을 샀는데

관동별곡을 외우라 하고

한자도 외우라 하고

담배를 피우다 피다 뭐가 맞게?

이딴 걸 외우라

뭐 그냥 다 외우라 하더라.

그래서 버렸다.

근데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존~나게 외우라는 식으로 문제가 나왔었다.

이거 좀 발을 잘못 들였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으나

시험과 기출문제의 연관성이 크다는 데서

희망을 발견했다.

일단 기출만 잘 해보고, 나머지는 기도메타로 가자.

이렇게 생각하고, 일단 달렸다.

그렇게 준비했으나, 시험 점수는 좋지 않았다.

합격점수와 100점 정도 차이가 났다.

수능 3년 동안 1등급을 맞아 황금 베이스라 생각했던 한국사는

문제에 장길산이 나오는 시험에서

60점을 받을 수준밖에 되지 않았으며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 행정학은

왜 하필 이걸 열심히 했냐고 말하는 듯했다.

참 현타였던 것이, 이걸 공부하는 건 너무 오바라 생각하여

아예 1도 공부하지 않은 국어 점수가

85점이 나오고, 그게 그 시험 최고 점수였다는 것…

아무튼 88일의 전사는 광탈했지만

운이 좋았는지, 10월에 패자부활전이 열렸다.

과목은 똑같은데, 부처만 노동부로 정해진단다.

아직 2달 남았고,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가능성 자체를 크게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지만

아무튼 묵묵히 달리면서, 마음은 내려놓는

기대컨트롤을 적절하게 했더니

컷 +1문제로 턱걸이 합격하는 운이 따랐다. 5개월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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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잠시 음슴체로 요약)

합격해서 유예 때리고, 노량진 학원에서 일함

첨엔 5급 도전할까 하다가, 편하고 즐거운 생활에 절여짐

2018년 = 근 6년 동안 가장 행복했음

해피에 안주하다 10월 쯤, 노동부 지방청가기 싫어서

서울에 있는 직렬을 알아봄. 시험 자신감은 있었으니.

근데 그게 감사원, 그래서 준비할 결심. 시간은 충분했음.

? 갑자기 11월에 2월에 서울시 일행 추가채용 오픈한다함

오픈런 공부함. 필기 찢음. 그래서

어차피 서울인데 감사원 굳이? 하는 마음으로

19년 봄은 그냥 행복하게 보냄.

근데 5월에 면접 미흡 뜸. 대 환 장

감사원 바짓가랑이 붙잡고 제발 살려주세요 식 공부.

회계학땜에 피똥 쌌으나, 시험날엔 완성되어 운좋게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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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어보면, 계획성 없이

눈 앞에 주어진 상황에 맞춰 일터를 구하는

인생에 무책임한 인간을 하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나같이 내적 동기가 약하게 입사를 한 사람이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그만 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혹시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과연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본인에게 더 맞는 일은 무엇일까

충분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처럼 얄팍한 동기로 입사를 하더라도

일과 내가 찰떡같이 하나되는 운 좋은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그러면 다행이다.

하지만 감사일 자체가 천성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스트레스를 받으며, 여타 직장인들처럼

참고 버티는 것이지.

이미 다니고 있는 중이라면,

안 맞아도 참고 다니는 게 당연할 수 있으나

아직 들어가지 않은 상황이라면,

굳이 그런 상황을 유도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뭐 물론, 충분히 알아본다고 하더라도

막상 겪어보기 전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

아무튼, 나는 그렇게 감사원에 들어갔다.

사실 나는, 잘못한 거 지적하는 일이

뭐 딱히 안 맞을 게 있나 싶었다.

그리고 설령 안 맞더라도, 적당히 남들 만큼 하면 되겠지…

이렇게 생각했다.

다 오판이었다. 

일에 대한 것도,

내 능력에 대한 것도.

1 thought on “감사원 입사 이유(인생사)”

  1. 일에서 어떤 부분이 잘 안 맞으셨는지 궁금해지는 글이네요. 저도 나름대로 제 성향이나 능력 등을 주관적으로 평가하고 감사원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일을 실제로 해보면 제 예상이 맞을까 싶기도 하고요 ㅎㅎ 다음 글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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