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기억 더듬는 글
중세 유럽 도시에는 수공업 길드가 있었는데
오늘날로 말하면 수공업자 조합이다.
길드에서 짬이 되고 실력이 되는 이들을 장인이라 불렀으며
그 장인들은 밑에 여러 단계의 제자들을 거느렸다.
갓 들어온 비숙련공은
장인, 또는 그 아래 단계 수공업자에게 배우며
저마다의 기술을 개발해나갔는데
이 시스템을 도제(apprentice)라 했다더라.
먼 훗날
동방 어느 국가의 어느 공공기관에서도
길드st 도제식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날씨는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했지만
팔자에도 없는 번개에
조금은 고통을 느끼던 바로 그 즈음
나는 굉장한 특별 대우를 받고 있었다.
바로 과장님의 1:1 과외.
대충 이렇다.
아직 타이까지 차고 있는 짬이라
당연히 정시보다 30분 일찍 출근한다.
과에 가면?
과장님만 있다.
과장님이 회의 탁자로 부른다.
막 여러가지를 물어보신다.
재료는 보통
본인이 현재 수정중인 과원들의 보고서였다.
이건 어떤 것 같으냐
이렇게 하면 잘 쓴 거 같으냐
이런 걸 물어보셨다. (내가 어케아누)
20%에서 25%로 올랐으니 5%올랐다.
이게 맞냐 틀리냐
이런 질문도 있었는데,
수능 3수에 경제까지 선택한 이에게는
귀엽기 그지 없는 질문이었으나
질문한 이의 마음을 생각해서
살짝 고민한 척을 한 후 그것이 틀리다는 대답을 하기도 했다.
굉장히 흡족한 반응을 보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나 그분이나 둘다 소름돋겠지만
(나: 내가 어찌 그랬지? / 그: 그새기가 어떻게 그랬었지?)
그때만 해도, 얼마나 기특했겠는가?
가자는 번개도 다 가지,
동기들 부르라면, 숫자 맞춰서 다 불러오지,
심지어 번개도 가면서, 내일까지 해오라는 숙제도 다 해오지!
아, 숙제라는 것은
다른 과원이 들고 있는 청구 건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1장 정도로만
대충 써오라는 것이었다.
과장님 입장에선 살짝 무리데스를 요구하고
요놈이 어디까지 해오나 본 것인데
내가 지금 생각하면 믿기 힘들 정도로 꾸역꾸역 잘 해갔었다.
얼굴 시뻘개진 상태로, 냄새 풍기느라
동네 스카인들은 좀 고통을 받았겠지만…
어쨌든, 그러다 보니
그는 그동안 꿈 꿔왔던 일을
드디어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꿈은, 뭐 개인적인 꿈이야 여러가지겠지만
적어도 이곳에서의 꿈을 말하자면
자신이 과장일 때 갓 들어온 직원을 직접 트레이닝해
유능한 감사관으로 육성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초기 튜토리얼을 어느 정도 해내자
뭔가 빛이 한 가닥 보이는 느낌이었으리라.
그래서인지, 그는 더 박차를 가하는 듯
좀 한가할 때면 나를 본인 자리로 불러
시도 때도 없이 보고서 강의를 조지곤 했는데
뭐,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
상당히 유익했음을 고백한다.
개조식 보고서는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어떤 양식이 보기 제일 좋은지, 그리고
어떤 양식에 구애받지 않고 유연하게 고치는 건 또 어떻게 하는지
자세히 배울 수 있었거든.
대부분의 동기들은
과장은 커녕, 과 직원들과도 제대로 얘기도 못하던 때라
동기들과 bai메신저나 두드리고 앉아 있었겠으나
나는, 비록 그게 과장-서무 1:1 밀착이라는
다소 기형적인 형태긴 할지라도
어쨌든 뭔가를 ‘실질적으로’ ‘배워가고’ 있었다.
그래서 입사하고, 한 2달 정도 될 때까지는
역대급 과장-서무 관계를 유지했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아침마다 회의탁자에서 신문을 펼치며, 사회 이슈에 대해 묻는 것에
별 관심도 없고, 상식은 더 없어
대부분 잘 모른다고 답했지만
그런 건 히히 웃으며 “에이 무식한 놈”
이렇게 귀엽게 넘어갈 수 있을 정도였고
실제로 이런 관계를 보고, ‘부럽다’고 한 동기도 있었다.
당연히 좋은 관계지.
표면적으로는.
사실, 나는 꽤 많이 불편했다.
과장님이야, 뭐 좋다, 에이스다, 아주 훌륭한 직원이 들어왔다
이렇게 말을 하고 다니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아니 내가 대체 뭘했다고?”
이 생각이 계속 들 수 밖에 없었기 때문
내가 한 거라곤
번개 따라가기, 해오라는 거 해가기
아침에 담배필 때 따라나가기
이 정도 뿐이었는데…
기본적으로 감사원에서는
수습기간에 서무에게 별 대단한 일을 시키지 않기도 하고
하필 다른 과원들은 한창 바쁠 때라
그들과 같이 일할 일이
아니 말할 기회도 거의 없었던 게 계속 부담이 됐다.
내가 무슨 엄청 훌륭한 직원인 것마냥
광고를 하고 다니시니
난 자연스레 나의 ‘거품 논란’을 걱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빈수레인걸 내가 아는 데
왜 다른데서 요란하게 확성기를 켜나…
그냥 좀 다른 동기들처럼
고요하게 다니고 싶었다.
뭐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소문? 이딴 건 필요없으니
그냥 천천히 배우고, 소소하게 성장해가고 싶었다.
물론 그런 걸 좋아하는 야망러들도 있지.
근데 난 그런 사람들을 잘 이해 못한다.
정확히는, 별로 안 좋아한다.
아니 ~~~~!!!! 선생님!!
야망 있으면!
니 대가리가 어떻든! 행시하셨어야죠!
왜 7급하고 야망 챙길라 함! 양심 ㅇㄷ?
아 물론, 야먕이 있는 게 나쁜 건 아니다.
야망 원툴이 나쁠 뿐이다.
꼭 순수하게 ‘일을 하는’것보다 ‘티가 나는’데만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본인이 그런 걸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줄 아나 보다.
그냥 너무 같잖다.
아무튼…뭐 나는 얌전하게 살고 싶었다는 거다…
이 블로그에 뭐 퇴사 원인 중 하나로
내가 일을 못했니 이런 얘기도 여러번 했지만
적어도 그때까지 그런 이슈는 없었다.
(그때까진 뭐 제대로 된 일을 안 해봤으니까~)
그보다는 자유인 → 회사원 이 변화에서
면역력이 거의
유럽인들 만난 인디언들급이었을뿐.
술자리가 님의 메인 사유?
노노
퇴사원인을 물으신 거면, 그건 아니다.
퇴사즈음에 술을 오지게 먹는 사람들과 같은 과에 있긴 했으나
오히려 그때는 상당한 MZ력을 발휘하며,
광해군 메타로 중립 잘 쳤기 때문.
근데, 갓 신입때는 확실히 그게 제일 스트레스긴 했다.
정확히는
번개 → 가까워짐 → 광고 → 번개 → 가까워짐 → 광고 → 번개
이 굴레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구라로 번개를 하루 째면, HE 삐진 기색이 역력하다.
그걸 만회하려, 열심히 한다. 그러면 HE 기분 좋아짐. 또 번개 제안.
간다. 걸레짝이 된다.
취해서 침대에 머리 대자마자 아침에 눈뜬 것 같은 그 느낌
난 그게 제일 싫은데, 그때는 그걸 참 많이 느꼈다.
동기들은 과장과 저녁 식사 한 번 제대로 안 해봤을 때
나는 어쩌다, 벌써 ‘저녁 자리’에 염증이 생겼다.
저녁 자리?
물론 잘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뭐 대단한 약속도 없는데, 그냥 가면 어떤가?
가서 뭐 광대질이라도 하라 하나? 아니다!
적당히 시간 때우면 되고, 밥도 술도 다 사준다!
심지어 메뉴도 최소 육류다!
가는 게 안가는 것보다
회사 생활에 당연히 좋다!
근데 …
싫다고…. 필요없다고…
나 야망 없다고…
그냥 평범하게 있고 싶다고…
안 간 걸로 책임을 물으시겠다면
뭐 그냥 탐탁치 않음이든, 대놓고 지랄하든 근평이든
내가 지겠다고… 그냥 나한테 가자 하지 말라고…
뭐 대충 이런 스트레스가
그때의 내게서 서서히 생겨났다.
처음이야 이게 얼마나 더 계속될지 몰랐고
예의를 차리기도 해야 해서
열심히 따라가고 그랬던 것이지만
내가 이 과에 있는 한 이게 계속된다는 걸 안 이상,
이제 별로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부담스럽고, 의미 없는 저녁 시간이 싫었다.
그래서 정말 용감하게도, 7급 따리 주제에
3급 과장의 저녁 제안을 3번 연속 거절하기도 했다.
흔히 거절에 관해 얘기할 때, 처음이 어렵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런 상급자의 제안을 거절해보신 분은 알겠지만
거절을 할 수록, 뚝심을 유지하는 난도는
더 올라간다.
그걸 감수하고, 입사 3달도 안된 친구가
감히 3연 거절을 조진 것이다.
근데, 그래도 별 의미가 없다.
또 5시 40분에 쪽지가 온다.
환장할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