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교육원에서 배우는 것들
이 시리즈의 목표는 심플하다.
감사원 퇴사자로서
감사원 취업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물음표 투성이인 감사원에 대해
냄새라도 맡을 수 있게 하는 거다.
이번 글도 그런 역할을 하길 바란다.
감사교육원에서 배우는 것들 3편
다들 아시다시피
당연히 교육원에서 배우는 모든 걸
여기 온전히 다 담을 수는 없다.
내 기억의 한계는 물론이요
지면의 한계, 그리고
퇴직자로서의 의무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뭐 대단히 비밀일 건 없긴 하다)
아무튼… 대략적인 것만 알아가시고
나머지는 직접 오셔서 느끼시면 되겠다.
교육원에서 배우는 것들 중
지난 번 글까지 소개한 것들은
사실 감사관으로 일하며 중요한 것들은 아니었다.
개별 법의 내용을 배우고 외워서 시험보는 건
수험생들이 하는 거지, 감사관이 실무에서 하는 건 아니니.
(물론 감사 전에 관련 법을 잘 알아야 하겠지만)
근데 오늘 여기 담긴 것들은
실무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이면서
감사관 역량이랑 직결되는 것들이다.
바로 확인서, 문답서 작성법
그리고 처리안 작성법이다.
확인서 작성법
확인서는 증거서류 중 하나로
어떤 감사 대상 사실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문서이다.
A라는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이 있는 B로부터 5천만원을 받았다.
누가 봐도 나빠 보이는, 뻔히 알 수 있을 것 같은 잘못이다.
근데 이걸 입증하고, 보고서로 작성하는 건 다른 문제더라.
정말 말도 안될 정도로 많은 증거가 필요한데
그 중 하나가 확인서다.
보통 어떤 기관 또는 개인의 업무
또는 사실 관계를 죽 적고
위 사실은 틀림이 없음을 확인합니다. 의 형식인데
감사자가 수감 공무원과 면담을 하고 작성한 후
수감자, 피감기관 관리자(과장, 국장)의 서명까지 받는다.
실무에서는 확인서를 초장에 잘 정리해서 받아두면
문답 때 딴소리하는 걸 방지하는 역할을 했었다.
(“니 확인서에는 이렇게 써놓고 왜 구라쳐”류)
아무튼 이걸 감사교육원 과정의
중간 좀 넘어가서 배웠던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살짝 진땀이었다.
생소하기도 했고
뭔가 이제 진짜 감사를 배우는 거 같아서.
실습도 하고, 점수도 메겼던 걸로 기억한다.
잘 하는 게 좋다. (난 잘 못함ㅋ)
꼭 점수 때문만이 아니라, 첫 출장가서 선배들이
“요놈 시험해봐야지” 마인드로 시키는 경우도 많으니
잘 해두는 게 좋다. (이때는 괜찮았음)
문답서 작성법
문답서는 묻고(문) 답하는(답) 형식의 문서인데
역시 주요 증거 서류 중 하나다.
보통 징계 등 개인 처분을 염두에 두었을 때 문답을 하는데
그런 성격 때문인지
문답은 아침에 시작해서 새벽까지 쭉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며칠 동안 몇 차례 계속하기도 한다)
지적하려는 사실을 수감자의 입에서 꺼내기 위해
여러가지 빌드업을 하는 과정이
문답서에 그대로 담긴다.
당연히 수십 페이지가 되는 경우 is 부지기수
문답서 강사로는
원내 문답 1타라는 평을 받는
공채출신 K모 수석님(4급)이 오셨는데
‘진짜 문답 개잘하게 생겼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수업에서는 적당히 수줍음을 보이셨지만
실무에서는 호랑이였는지
그로부터 3년이 지나
무려 국장이 되었다.
정치적 시기가 잘 맞고
개인 능력이 출중하면 기회가 넘치는 곳
그게 감사원 7급의 장점이 아닐까 한다.
(난 아니라서 퇴사한거~)
처리안 작성법
감사원에 관심이 있어 감사원 홈피에 들러
감사보고서를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거기서 처분요구를 본 적도 있을 것이다.
그 처분요구가 처리안이다.
쉽게 말해서
수감 기관, 수감자의 잘못을 지적하는 문서다.
구성은 대충 이렇다.
업무개요(A는 이 일을 수행하고 있음)
정당론(뭐시기 법에 따르면 A는 이렇게 했어야 했음)
지적사실(근데 그렇게 안함)
결과(그래서 이런 안좋은 결과가 생김)
뭔가 간단해 보이는데
쓰기가 쉽지 않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한 문장 한 문장 그냥 쓰는 게 아니라
확인서, 문답서 등 각종 증거서류에서
그 내용이 뒷받침되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처리안 실습은 정말 중요해서
그냥 강의 몇 번 띡 띡 시험 땡으로 끝나지 않는다.
애초에 원에서 교수요원으로 수석 or 과장님이 와서
몇 주 동안 조별로 지도를 해주고
개인별로 첨삭도 오지게 해준다.
당연히 점수도 건건이 메긴다.
참고로 그 배점이 정말 크다.
앞에서 법 과목 시험 점수를 아무리 똥으로 받아도
처리안 하나만 잘 쓰면
단숨에 상위권 삽가능할 정도다.
그래서 방만하게 행복하게 지내던 우리 동기들은
정확히 이때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그전까진 대체로 평등사회였다면
이때부터는 계급차가 좀 느껴진다.
‘내가 여기 적성이 딱히 있진 않네’
‘아 생각보다 일이 까다롭네’
일부 깨닫게 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렇게 느꼈고…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막상 본원에 오면
3년 동안 쓰지 않고 승진하는 경우도 있으니
크게 상심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언젠가 쓰긴 하지만!)
3편을 마치며
제목은 참 거창하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다.
내가 배웠던 내용, 느꼈던 감정의
겉핥기 수준에도 못 미칠 거다.
하지만 누구도 다루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이 글의 내용은 감사원 관련 정보 중
가장 최신의, 가장 정확한 것이라는 슬픈 사실…
이번 글도 읽느라 고생 많으셨다.
다음 글 정도에서 교육원 소개를 마무리하고
이제, 본원으로 가보려 한다.
안녕하세요 글 정말 잘 보았습니다.
사실 감사원에 계셨던 퇴직자분께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무례할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여쭤볼 분이 없어 솔직하게 여쭤봅니다 ..
제가 원래 5,7급 같이 준비하다가 유예 끝마고 이제 곧 교육을 받으러 가는데요.
아직 5급에도 미련이 있어 공부중인데 교육 받는 연수원 생활중에도 공부를 해야합니다.
술이나 개인 문화생활 포기하는 건 괜찮은데 교육끝나고 공부하는 게 걱정이네요.
혹시 교육은 보통 몇시쯤 끝나는 걸까요?
기숙사는 2인1실이라서 같은 방 동기에게 공부소식이 알려질까 걱정되는데 교육끝나고 공부할 수 있는 장소나…그런 곳이 있을까요..
분위기가 교육끝나고 갠플 해도 되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교육은 4시반 정도에 끝났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금도 비슷할 것 같네요.
음…갠플은 솔직히 무방하고 어디 짱박혀서 공부할 곳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언젠가 우연히 복도 어슬렁거리는 동기/직원이랑 마주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냥 말씀하시고 하시는게 편할 것 같아요. 향상심 있는 사람들이라, 이해할 거에요.